[시/뼈아픈 후회]

감상 2014. 12. 8. 21:37

뼈아픈 후회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혀다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 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돌아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高熱)이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희생, 나의 자기 부정 ;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주는 바람뿐


<소월시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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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알게 되어서

입에 자꾸 되뇌이는 구절이 있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이 구절 자체가 입에 붙기 좋은 자모음의 모임인 걸까.

잘 쓰인 구절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한다.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도 참 좋아하는 시다.

본인은 5분만에 휘리릭 쓰여서

독자들에게 미안하다고 하시나,

어쩌면 마음에 쏙드는 구절은

마음에서 여과없이 나온 것이구나 하게 하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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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이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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