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아픈 후회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혀다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 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돌아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高熱)이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희생, 나의 자기 부정 ;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주는 바람뿐
<소월시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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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알게 되어서
입에 자꾸 되뇌이는 구절이 있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이 구절 자체가 입에 붙기 좋은 자모음의 모임인 걸까.
잘 쓰인 구절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한다.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도 참 좋아하는 시다.
본인은 5분만에 휘리릭 쓰여서
독자들에게 미안하다고 하시나,
어쩌면 마음에 쏙드는 구절은
마음에서 여과없이 나온 것이구나 하게 하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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