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세계

아이타키 作







***





  나는 참으로 이상한 애였다. 어딜가도 지질 못해 무슨 수를 서라도 이기고 마는 성격이었다. 어머니는 여자애가 투기가 심해 어쩌냐고 걱정을 하셨다. 그러나  그 걱정은 참으로 걱정일 뿐 동네사람들이 모두 내 아버지 땅에서 소작을 하고 있어 동네 안에서는 항상 일등 대접을 받고 자랐다. 그러나 문제는 나였다. 지선이는 지는 걸 못 참으니 모두 져주라는 어른들 말씀에 어린 나는 승리의 맛을 스스로 얻을 수가 없어 항산 분에 차있었다. 나는 투기가 심한 것이 아니라 승부욕이 있을 뿐인데, 왜 내가 고무줄놀이에 져 분한 것은 투기고 건넛방 재석이가 씨름에 져서 분해 하는 것은 사내다움인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줄곧 이상한 여자애로 이상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소학교 다닐 적에는 이런 대접이 싫어 집에 와 울어대니 나는 더 골치 아픈 딸내미가 되어있었다. 이에 대한 아버지의 방책이 영자가 나를 따라 학교를 다니면서 내 비위를 맞춰주도록 했던 것이다. 이 것이 나를 더욱이 이상하게 만들었고, 결국 보통을 흉내내기에 지쳐 이 보통의 세계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일본에 다녀온 혜수네 오빠가 그랬다. 

"외국에 가면 다시 태어난 것 같다. 나를 둘러싼 세계만 새로운 것이 아니라 어른처럼 행동할 뿐 갓 태어난 아이 대접을 받는다. 이름조차 새로 생긴다." 

일본이든 미국이든 어디든지 가기로 했다. 나를 둘러싼 보통의 세계는 보통이 아닌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린 나는 이상한 사람이 무엇인지 몰랐고 자란 나는 이상한 사람이고 싶지 않았다. 이상한 사람으로 자란 나는 외로웠다. 처음부터 보통인 사람으로 태어나 보통의 세계에 스며들고 싶었다.


  외국에 가겠다고 하니 아버지가 펄쩍 뛰셨다. 외국은 상놈들이 많아 견디지 못할 거라 하셨다. 혜수네 오빠는 일어를 잘했다. 나는 일어를 못했다.

"아버지, 서울에라도 보내주세요."

이미 서울여자대학에 원서를 내고 입학허락을 받은 상태였다. 입학허락서 우편을 내어 놓았다. 처음에 외국얘기를 꺼냈다 서울이라 하니 마땅찮은 표정이셔도 처음처럼 길길이 날뛰진 않으셨다. 그 날로 서울 갈 짐을 싸고 서울에 올라갔다.



  입학처장이라는 사람이 나를 기숙사로 인계해 나는 기숙사에서 방을 배정받았다. 같은 방을 쓰게 된 여학우는 서울 가정대 2학년으로 서울토박이었다. 개학까지는 며칠간 시간이 있었다. 한 방 쓰는 가정대 언니가 서울구경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맥주를 마셔보겠냐고 했고 나는 그러자고 했다. 맥주를 마시고 계산하려니 옆 테이블에서 계산을 했단다. 머뭇거리는 날 보고 언니가 그냥 나가자고 해 가게에서 나왔다. 개학을 했고 수업을 들으러 교실에 앉아있었다.


왠 여자애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그리고 그녀의 친구들을 만났다. 새로 태어난 내가 보통의 세계를 만났다.


영자가 아닌 세계가 보통인 채로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살던 이상한 세계와 달리 나를 포근하게 보통으로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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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여름 달

마음의 양식 2015. 8. 24. 16:02

여름 달

아이타키 作

 

 


***

영자는 원래 우리집에서 일하는 애가 아니었다. '우리집'에서 일하는 애가 아니었다. 나를 위해 일하는 애였지만, 그것은 내가 학교에 내 도시락을 배달한다거나 학교에서 내게 물을 떠온다거나 하는 일이었다. 내가 고등학교 졸업반이 되고 대학을 위해 서울로 가겠다고 아버지께 졸라 댈때도 내 책가방을 들어주고 도시락을 들어주러 등교하는 애였단 말이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영자를 볼 일이 없을 줄로만 알았다. 

여자애가 어디를 혼자 올라가냐며 영자를 붙여주겠다고 할 때도 한사코 거절을 해 여자기숙학교에 들어갔건만, 방학이라고 돌아온 집에 영자가 있느냔 말이다.

"지선이 왔니? 우리 딸 오느라 힘들었지?"
"기다리는 것만 제하면 그리 힘들지 않았어요. 서울이었으면 재석 아범 기다리지 않고 인력거를 잡아타고 왔을 것인데... 여기는 벽지라 어쩔 수 없죠."
"영자 아범이었으면 새벽장도 서기 전에 역에 가서 기다렸을 것 인디..."

 

혀를 차는 어머니께 그만하라고 면박을 줄 수는 인기척을 보이는 이 선생님께 어머니를 소개했다.

"선생님, 제 어머니셔요. 어머님, 이 분이 제가 편지에 얘기 드렸던 이 선생님이예요. 내 피아노 선생님. 영자야, 너 피아노 쳐 봤니? 이 분이 피아노 선생님이다. 피아노 배우고 싶으면 소개해줄게."

어머니와 이 선생님이 인사를 하는 동안 대문을 열고 눈치 없이 우두커니 서있는 영자에게 말을 걸었다. 영자는 또 눈치 없이 눈만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이 계집이 피아노를 알리가 있나.

"어머니, 피아노 방이 어디예요? 선생님 거기서 계시게. 내 옆 방이 비지 않았었나?"
"에그머니, 얘 그래도 손님인데 어디 니 방 옆이면 편히 계시겠니, 별채에 방을 차려드려야지. 얘 지선아, 그 피아노라는 물건이 무거워서 원..."

피아노가 벌써 왔나보다. 전보로 피아노 사달라고 전했을 때는 아무 기척도 없더니 아버지께서 사두셨나보다. 그러면 영자도 피아노가 뭔지 알텐데 맹한 눈으로 들은 척 도 안했단 말이다. 어머니께서 선생님을 모시고 별채로 안내하러 간 후에도 영자는 우두커니 내 앞에 서 있었다. 

"뭐하니? 짐 들여 놓지 않고."

영자는 끄덕 하더니 바닥에 놓인 짐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방에 들어와 모자를 벗어걸고 앉았다. 영자가 느릿느릿 가방을 마루에 걸터올리는 걸 보니 답답증이 올라온다.

"빨리 좀 옮겨. 나 덥다. 씻고 옷 갈아 입게 얼른 옷가방부터 옮기고 물 한 잔 떠와라."

"어떤 게 옷가방인지..."

"빨간 여행가방! 답답해서 참! 나 씻으러 갈테니 옷 챙겨서 가져와."

 

우물거리며 말하는 것이 답답해 소리를 빽 지르고는 씻으러 갔지만 유모해주던 아주머니가 아직 물이 덜 데워졌단다. 날도 더운데 많이 따뜻할 필요 없다고 얘기 해두고 방으로 돌아갔더니 영자가 내 옷가방을 펼쳐놓고 쳐다보고 앉았다.

 

속옷이 싸그리 나와있었다.

"뭐하니."

"옷이 너무 많아서 뭘 가져다 줘야 할지 몰라서..."

"속옷은 왜 이렇게 싸그리 나와있어. 구경났어?"

"아... 그런게 아니고..."

"됐어. 나가서 물이나 한 잔 떠와."

 

옷을 대충 챙겨놓고는 책상 앞에 앉아 있으니 누가 문을 두드린다.

 

"지선 아가씨, 씻을 준비 다 됐어요."

"나가요. 아주머니, 여기 챙겨둔 거 영자줘요."

 

씻고 나오니 욕실 앞에 물 한 잔이랑 개진 옷이 있다. 영자 이 계집은 끝까지 나를 무시한다. 점심이 다 되었다 하기에

선생님을 모시러 별채에 갔다. 선생님 방에서 영자가 나오다 나와 마주치고는 멈칫 한다.

 

"니가 왜 선생님 방에서 나오니?"

"옷 가져다 달라셔서."

"내가 가져다 드리마. 너는 내가 마신 물 잔이나 치워라."

 

옷을 받아서 선생님이 계신 욕실에 놓아두며 이른다.

 

"선생님, 저 지선입니다. 점심 준비 되었으니 식당으로 건너오셔요."

 

그래요. 하는 소리가 문 안에서 들린다. 식당가기 전에 어머니 방에 들렀다.

 

"어머니, 영자가 왜 우리 집에 있어요?"

"영자 아범도 그렇게 되고 한지 얼마 됐다고 영자 애미가 갔다. 너희 아버지가 데리고 들어오셨더라. 어차피 놓아준 땅도 혼자서는 못 보게 됐으니 여기서 일이나 하랬더니 온다고 했대. 그러나 저러나 너 서울가서 남자 데리고 온다고 해서 아버지가 화나서 아직도 안들어 오신다. 너 보기 싫다고. 신수도 훤하고 직업도 선생이고 좋기만 한데 그 양반은 왜그러시나 몰라."

"그냥 선생님이셔. 이래서 촌 사람들은... 그래서 영자는 계속 여기 있는거야? 자기 집에 안가고?"

"니 아버지께서 영자 아범집에 있는 거 다 빼고 거기에 재석이네 보냈어. 참, 재석이 장가갔다."

"재석이 장가 갔어?"

"그래, 니 아버지가 나이 딱 맞다고 매번 영자랑 재석이랑 둘이 살면 된다고 데리고 온다디만 재석이가 어디서 여자를 데리고 와서 결혼을 한대 잖아. 그래서 영자 오는 김에 방 빼서 그 집으로 보내버렸어."

"정말? 잘 됐다. 어머니, 얼른 식사하러 가십시다."

 

식당에 가니 이미 선생님이 와서 앉아 계신다. 나와 어머니도 식탁 앉아 식사를 하려는데 아버지가 들어오셔서는 영자에게 식사 차려서 가져오란다. 어머니가 눈치를 줘서 아버지께 같이 먹자고 얘길 한다.

 

"아버지, 손님도 왔는데 같이 식사하셔요."

"손님이 오셨어?"

 

아까부터 일어나 아버지께 인사하려는 선생님을 보셨을 법도 하건만 보지 못한 척 하셨다. 헛기침을 하며 "그럼, 앉아야지." 하며 선생님의 행색을 살피는데 자신이 보기에도 멀끔한 행색이라 못마땅하게 쳐다보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해 안달이 난 표정이셨다.

사실 선생님은 말로 하자면 입 아플 정도로 미남자다. 내가 다니는 여자대학 학생들이 제일로 배우고 싶어하는 선생님이기도 했다. 서울 토박이로 프랑스에서 피아노를 배워와서 다시 서울에 돌아온지는 2년도 채 되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공항말고는 서울 밖으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하여 내 집이 부산인데 가서 있는 동안 숙박비 받지 않을테니 피아노를 알려달라고 하자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부산이니 바다 구경이나 실컷 시켜 주겠다 했더니 프랑스 가면서 바다는 실컷 봤단다. 그저 서울 밖인 것 만으로도 즐거울 것 같다니 잘 되었구나 하고 모셔온 것이다.

 

"지선이한테 피아노를 가르치신다고요?"

 

상이 이미 차려졌지만 아버지께서숟갈을 뜨기 전에 물으신다. 어른이 수저를 들지 않으니 배가 곯아도 아무도 식사를 시작할 수가 없다. 선생님은 곤혹스러울텐데도 "네, 제가 서울 밖은 이번이 처음이라 구경도 다니고 하면서 있을 곳을 마련해주신다 하여 숙박비 대신 지선 학생에게 피아노라도 가르쳐주려고 합니다. 이번 휴가동안 잘 곳도 마련해주시고 이렇게 식사도 같이 하게 해주셔서 영광입니다." 하고 대답한다. 저런 모습을 보면서 어찌 나쁜 감정을 가질 사람이 있단 말인가. 아버지도 허허하고 웃으시고는 잘 둘러 보시고 가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식사는 좋은 감정으로 끝을 맺었다.

 

 

 

***

 

마당에 나가려는 차에 어머니께서 방에 찾아왔다. "지선아, 아버지가 이 선생님을 영 마음에 들어하신다." 나를 보며 슬그머니 웃는 어머니를 보니 어머니도 마음에 드시는 눈치다. 대충 알았다고 하고는 마당으로 나갔다. 해가 져 어두울 줄 알았더니 달이 꽤 밝다. 서울로 학교를 가서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부산에 이렇게 허무하게 빨리 오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러면서도 부산으로 오는 기차 안에서는 어찌나 부산이 그립던지, 내가 생각해도 우스웠다. 부끄러운 기억의 스무살이 채 끝나지도 않아 그리워졌다.

갈 곳을 모르고 마당을 빙빙 돌다 별채 앞에 섰다. 돌아 나오려는데 인기척이 있어 쳐다보니 영자가 별채에서 나온다.

 

"니가 여기서 왜 나오니?"

"아, 그게. 뒷간에 가려는데 선생님이 물 좀 떠달라고 하셔서 물 갖다 드리고 나오는 길이야."

"그러니?"

"나, 가볼게. 지선 아가씨."

 

쫓기듯 사라지는 영자를 잡지 못하고 별채를 괜히 쏘아본다. '왜 밤 늦게 여자애를 불러세우는 거람. 건넛 방에 재석어멈도 있는데.' 그러고 보니 영자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돌아오는 영자를 기다리며 마루에 앉았다. 얼마지 않아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모퉁이를 돌아 영자가 들어온다.

 

"이거 받아."

 

갑자기 나는 사람소리에 놀랐는지 소리는 안나도 '으악' 하는 입모양이다. 든 물건을 내미니 뭔지도 모르고 일단 받고 본다.

"빨아 둘까?"

"너 해라. 이 맹추야. 너 이렇게 하얀 옷 가져 본 적 없지? 내가 사주는 거다. 서울가면 이런거 엄청 많아. 재석어멈한테 너 주랬는데 욕실 앞에 뒀더라. 너 가지라고 준거야. 나는 이렇게 촌스러운 옷 안 입어."

저 주는 옷이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욕실 앞에 개뒀던걸 다시 내미니 빨아 준다기에 괜히 험한 말이 나왔다. 그제서야 제대로 받아드는 것을 보고는 돌아섰다. 생각해보니 또 받은 걸 입지도 않고 버려둘까 싶어 다시 불러세웠다.

 

"영자야, 그 때 했던 말은 다 잊어라. 나 싫어도 그건 받아도 된다. 가봐라."

 

방에 돌아와 불을 껐는데도 달이 밝아 그런지 좀체 잠이 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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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있으면서 봤던 드라마인데 영화로도 있다는 걸 알기는 했다.

아마도 책이 원작이 아닌가 싶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던 임수정 닮은 친구가 진짜 좋다고 그랬었다. 그 친구 평소에는 별로 말이 없는데 영화나 드라마인 자기 관심사 얘기가 나오면 엄청 신나하던 애였다. (정확히 모를지도 모른다. 그 당시 나는 사람을 깊이 사귀던 사람이 아니었다.)

여하튼, 대학을 가고 그 친구랑 만난 적도 기억이 난 적도 없었다.

그러다가 인도에서 아는 언니가 드라마 보자고 해서 놀러 갔는데 정작 언니는 어딜 가버리는 바람에 나 혼자 덩그러니 드라마를 보게 됐다.

그 때 뭘 볼까 뒤적이다가 나온 게 이 드라마.(그 친구가 재밌다고 한 것은 보통 다 재밌었다. 취향이 까다로운 친구였거든.걔가 본 건 영화니까 좀 다를테지만.)

전반부까지는 '뭐여... 이거... 판타지 잖아.' 하고 생각했다.

후반부는 '으헣헣허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눈물 콧물 쏙 뺐다는 이야기.


그로부터 6년이 지났고 이번에는 영화였다.

애인과 같이 봤다.

영화를 아니라 애인을 본 느낌이다만은 

그것은 애인이 이런 류의 영화를 보면 엄청 울 것을 알아서 언제 우나 싶어 열심히 구경한 탓이었다.


예상대로 영화의 내용은 감동적이고 슬펐으며,

아름다운 영상미, 나레이션이 있었고,

매미 소리가 날 때 쯤 해서 영화는 끝이 났다.


그리고 애인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다음은 1리터의 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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